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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1 강원도 횡성장 2
오일장2009. 1. 1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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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동안 횡성장 한편에서 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봐 온 안명숙 씨(65). 그 어떤 곳 보다도 옥수수 함량이 높고, 직접 손으로 뽑는 까닭에 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는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결국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양념장과 김치가 곁들어진 올챙이국수 한 그릇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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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양념장과 김치가 없으면 아무런 맛도 없는 것이 올챙이국수건만 목에 걸리는 것도 없이 술술 넘어가는지라 소화도 잘 되고 시원한 식감 덕분에 노상 식당의 자리는 끊임없이 사람들로 들어찼다. 지금은 올챙이국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지경이 되었지만, 육남매를 낳아서 공부시키고 입혀서 이제 모두 분가를 시켰다니 어찌 위대한 어머니요, 올챙이국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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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횡성장은 명실공히 강원도에서 제일 큰 오일장이었다. 1. 6일에 서는 횡성장은 장의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예전 모습을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장인 까닭에 장돌림들이 많이 찾는 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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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나 춘천에서 5번 국도를 따라 횡성읍으로 들어서면 '시장'이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횡성읍에서 오일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로터리에서 시작된 난전은 중앙시장 옆길을 에워싸며 군청이 있는 삼일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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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로 나가는 도로에는 저마다 집에서 가꾼 농작물들을 비닐 봉지에 담아 펼쳐놓고 있는 할머니, 아주머니들로 정겨운 풍경을 이룬다. 물건은 사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나를 불러세워놓고 양손 가득 밤을 담아주시는 할머니가 계시는가 하면, 사진 한 장 찍자고 말씀드리니 얼굴을 붉히시면서도 하얀 이를 드러내시며 미소를 보여주시는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장 인심은 어느 곳에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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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장에 이처럼 장꾼이 많이 몰리고 인심이 좋은 것은 장사가 잘 되어서만은 아니다. 인근의 원주나 홍천, 춘천의 오일장 장세가 줄면서 설 자리를 잃은 장꾼들이 그나마 옛 모습이 남아있는 횡성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십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고추 장사를 해왔다는 칠순 넘은 어르신도 횡성장이 옛날 같지 않다며 보일 듯 말 듯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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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은 5번, 6번 국도가 교차하는 곳이라 어찌 보면 교통이 편리한 듯 해도 삼마치고개를 넘어 홍천으로 가는 것이나 성지봉 중턱을 넘어 양평으로 가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 또한 홍천은 횡성과 비슷한 규모고, 서울이나 춘천은 거리가 멀어 횡성 사람들이 큰 도시에서 물건을 구입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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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 횡성 사람들의 생활은 편리해진 대신 횡성장의 상권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섰던 횡성장, 안흥장, 강림장, 둔내장, 갑천장, 청일장, 서원장 중에서 현재 횡성장, 안흥장, 둔내장 외에는 모두 사라졌다. 줄어든 농촌 인구와 더불어 편리해진 교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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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뒤쪽 길의 이름이 삼일로인 까닭은 일제 때 이곳 횡성장터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이 있었던 까닭이다. 횡성에 퍼진 천주교의 역사가 말해주듯 횡성 사람들 중에는 일찍부터 개화한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교육열이 높았고 외지 사람에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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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횡성장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오일장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층이 주를 이룬다. 장터를 기웃거리며 한나절을 보내는 일군의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단언컨데, 이제 단 한 곳도 없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오일장을 아이들과 함께 찾는 젊은 부부들이 없는 까닭이며, 살을 부대끼며 정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오일장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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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일장에 가보면 느끼게 된다. 대형 할인점과 양판점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가슴 한편을 건드리며 우리가 이때껏 잊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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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난날 한없이 넓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의 등에서 배어나던 따스함이나, 얼음 깬 물가에서 부르튼 손으로 우리들 옷가지를 빨아주셨던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 같은 것이리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전국을 엄습했다는 오늘, 돌 보다 더 딱딱한 횡성황률 입 안에 한가득 물고 차근차근 불려서 씹어먹고 싶다. 그리 달지도, 맛나지도 않는 그것을.......  

(사진 촬영한 날 2008년 9월 26일, 글 쓴 날 2009년 1월 10일)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