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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9 강원도 양양장 4
오일장2009. 1. 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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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백두대간 너머 있는 영동지방은 나라 안에서 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영동지방으로 가는 교통이 불편하다는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고, 해마다 여름철과 가을철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옛날의 한적한 맛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한계령에서 양양 쪽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풍경에 취하고, 오색약수도 한 잔 마시면서 그렇게 유람하듯 가다보면 이윽고 "산 좋고 물 좋은 양양이라네"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양양읍내다. 양양장은 이곳 읍내에서 바닷가 7번 국도 쪽으로 나가다가 조금 못미처 있는 양양상설시장 자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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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는 그냥 상설시장이지만 장날이 되면 인근 시골에서 나온 장꾼들과 인근 큰 장을 따라 도는 장돌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큰 장이었던 양양장은 오늘날에 이르러선 그 규모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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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물품은 쌀, 콩, 감자, 보리 같은 곡류가 주종을 이루고, 철 마다 나는 야채와 과일, 나물 등이 그 다음으로 많다. 이는 양양군이 해안선을 끼고 있기도 하지만 영동지방의 다른 곳에 비해 산간과 평야지역이 고루 분포한 반농반어(半農半漁) 형태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느 동해안 지역과는 달리 장에서 수산물의 거래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것은 긴 해안선을 끼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항구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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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인근의 시골 사람들이다. 교통편이 발달한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이나 개인 통신 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서로의 처지를 알 수 있는 시절이 되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나 친척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묻는 정겨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오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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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특산품이라 하면 무엇무엇 해도 송이버섯을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양양장엔 국산 송이버섯을 찾아보기 힘들다. 날이 워낙 가물어서 생산량이 적은데다가 소량 나는 것들도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기 때문이다. 하기사 국산 송이버섯이 있다손 치더라도 워낙 고가인 까닭에 일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난전에 소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싸리버섯이며 잡버섯들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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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을 받아 발그레 물든 강낭콩 한 바가지 손님을 기다린다. 이 강낭콩도 중국산인 매화콩이 수입되면서부터 부쩍 생산량이 줄었다고 한다.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땅의 모든 토종 농수산물은 어쩌면 그놈의 가격 경쟁력 때문에 모조리 다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품질은 생각하지 않고 싼 가격에만 눈을 맞추다 보니 누군들 농사를 짓고 그물질을 하고 싶을 것인가. 이제는 소비자들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온 듯하다. 너무 싼 것들만 찾다보니 안전성이 무시 된 저질의 수입 농수산물을 사 먹게 되고, 그로 인해 망가진 우리 몸의 건강을 치유한 데 드는 비용 걱정을 할 바에는 조금 더 웃돈을 주더라도 우리 것을 애써 찾고 사 먹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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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가 재래시장 보다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 할인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오일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은 이래저래 낯빛이 어두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형 할인점에서 볼 수 없는 인정이나 마음을 나누는 정취가 남아있기에 오일장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그 웃음소리가 그리워 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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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장을 통틀어 유일하게 대게를 가지고 나오신 아주머니 주변엔 대게가 좋니, 싸니 비싸니 하면서도 대게가 담긴 함지박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주머니들로 가득하다. 저울질을 하다말다가 결국 참다 못한 아주머니가 전대에 손을 올릴 지경에 이르자 그제서야 모두들 서로 사겠다고 한바탕 아우성이 일었다. 그래봤자 대게 몇 마리요, 몇 푼의 돈이지만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즐거운 줄다리기 한판을 치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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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꾼들은 어김없이 장세(場稅)를 내야 한다. 장옥에 가게를 가진 장꾼이나 트럭을 세워놓고 물건을 파는 장돌림, 난전을 펼친 할머니 할 것 없이 모두 장세를 낸다. 장터는 개인 소유도 있지만 대부분 국가 땅이다. 장세는 5백 원이나 1천 원쯤 된다. 면사무소나 읍사무소에서 별도의 관리인을 두고서 이 장세를 걷어 인건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보따리며 박스 등속에 넣어 머리에 이고 지고 나온 것들 다 팔아봐야 그것들 키우고 거두느라 들인 품값에도 미치지 못할 것은 틀림없을 터, 1천 원의 장세가 어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마는 그래도 장세를 걷는 관리인에게 인사도 건네고 안부도 묻는 어진 사람들이 오일장 마다 넘쳐난다. 말없이 야쿠르트 한 병 건네는 저 손길에서 묻어나는 인정, 그 인정을 오일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이 그 인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열려있다면 말이다.


(사진 촬영한 날 2008년 9월 8일, 글 쓴 날 2009년 1월 29일)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