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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8 바람과 햇볕이 피워낸 꽃, 천일염 10
김치, 맛을 보다2009. 1. 2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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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러 가시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돈을 팔아 고추를 사가지고 오시는 것인지 경운기에 몸을 실은 노부부가 지도와 사옥도를 잇는 연륙교를 건너가고 있다. 저 고추가 올 겨울을 나기 위한 김장에 소용될 것임은 대처에서 스며든 객의 눈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겠다. 증도는 이 연륙교를 건너 지도의 새끼 섬인 사옥도의 지신개 선착장에서 뱃길로 간다. 섬과 섬 사이를 차를 타고 날아가는 듯한 기분은 어쩐지 유쾌하면서도 씁쓸하다. 마치 유년시절에 뛰어놀았던 신작로 비포장 길이 시멘트로 포장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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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증도는 전증도, 후증도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의 정착을 위해 두 섬 사이의 바다를 메우고 염전을 조성한 것이 지금의 태평염전이다. 단일 규모로는 전국 최대로 100만평에 이른다. 여의도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다. 이곳에서 전국 천일염의 5%를 생산한다. 30kg짜리 50만 가마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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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만드는 것은 바람과 햇볕이다. 그래서 천일염(天日鹽)이라 했다. 이처럼 소금은 바다 농사가 아니라 하늘 농사다. 천일염은 정제염과 달리 독이 아닌 약이라 불린다. 갯벌의 풍부한 미네랄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갯벌의 풍부한 미네랄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 소금은 물표면 위에서 하얀 막처럼 퍼져 소금 결정들을 모은다. 그 모양이 마치 꽃처럼 생겼다하여 염부들은 소금꽃이라 부른다. 꽃은 다시 청색의 띠로 변한 뒤 사각의 결정이 된다. 그것들이 뭉쳐지면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 사각의 미세한 결정과 결정이 서로 만나 한 알의 소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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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은 보통 4월에서 9월에 많이 핀다. 그 중에서도 여름이 가장 많은 소금꽃이 피는 때이지만 하늘의 눈치를 매일 살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장맛비와 소나기가 잦은 계절이 여름인 까닭이다. 한 번의 폭우로 며칠 농사가 삽시에 거덜 난다. 해주로 바닷물을 내렸다가 다시 결정지로 끌어올리는 일이 무수하게 반복된다. 내리고 올리면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염전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소금의 맛은 탁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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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량 측정도 잘 해야 한다. 5mm 이하로 내린 빗물은 염전의 소금물 위에 얇게 떠 서로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상이라면 소금 결정이 녹는다. 이 때문에 여름엔 좋아서 울고 속상해서 울고,  이래저래 얼굴에서 소금기 마를 날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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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이는 염부들이 좋지 못한 소금을 이르는 말이다. 소금이 작고 거칠다는 의미로 되풀이할 수 있겠다. 어떤 바람이건 난치 쪽에서 결정지 쪽으로 바람이 불어주면 굵은 소금이 오고 그 반대라면 작은 소금이 온다. 그게 깔깔이다. 상품성이 없는 깔깔이는 해주(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따로 저장하는 창고)에서 바닷물을 퍼 다시 녹여야 한다. 때문에 10월 중순을 넘긴 태평염전에선 깔깔이를 녹이는 작업 밖에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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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들의 대패질이 끝날 때쯤 하루의 마지막 손님이라 할 수 있는 낙조가 염전에 드리워진다. 보통 염전의 하루는 새벽 일찍 헌물을 밀어내는 뒷물작업으로 시작한다. 볕 좋은 날에 널어 말린 간수는 오후 1시쯤 소금꽃이 피고 오후 4시쯤 결정이 맺힌다. 6시쯤이면 소금이 창고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더불어 염부들도 일과를 마무리한다. 염전을 뒤덮은 붉은 기운에 아직 녹지 않은 소금의 우윳빛 결정은 빛나지 않는다. 살을 태워 소금을 빚어내던 사람들의 땀방울도, 대패질에 일던 물방울도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이제는 모두 낙조에 묻혀 편안히 쉴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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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바다로 이어진 신안을 떠나 하동을 거쳐 곡성으로 가는 길. 서편 하늘에 낙조의 기운이 번지고, 그 빛을 다 잃고 땅거미가 깔릴 때쯤 명멸하는 낙조의 마지막 기운이 길을 가로지르는 구름 한 무더기를 그 선연한 빛으로 채색했다. 이 세상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은 모두 저렇듯 아름다울 수 있을까?  
 
-2007년 10월 19일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