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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7 배롱꽃 향기에 취해 세상 시름 던져두고 - 안동(安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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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 필 무렵 가야지 했던 안동. 여름 꽃나무인 배롱은 그 꽃잎이 100일 동안 붉어 백일홍이라 불리기도 하고 중국에서 건너온 까닭에 자미화(紫微花) 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홀로 앉아있는 해질 무렵, 누가 곁에 있는가
자미화가 자미랑(紫薇郞)을 마주하는구나' 노래했던 당나라 시인, 백거이.

'지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이 한 잔 하리라' 읊었던 조선조의 성삼문 등 수많은 가객과 선비들이 사랑했던 배롱꽃.

이렇듯 소쇄원 등 정자가 많은 담양 일대와 진도 운림산방 등 이름난 서원 주변에는 어김없이 배롱나무가 있다. 그 중에서도 안동 병산서원 배롱나무를 본 이후 상사병처럼 마음을 빼앗겼나니, 어쩌면 병산서원 만루대 마루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며 강산을 바라보고 싶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승의 모든 시름과 고단함을 아무렇게나 부려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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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친구를 만나듯, 그렇게 병산서원은 늘 그 자리에서 반가이 길손을 맞아준다. 여름철에만 와서 그런가 붉은 꽃밭을 이루는 배롱나무들은 늘 그렇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만 같다.

만대루에 올라가 한 자리 차지하고 아무렇게나 앉는다. 마치 꼭 그래야 할 것처럼, 그림처럼 펼쳐진 눈 앞의 병산과 그 아래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강물의 결을 따라 내 마음도 쉬이 풀려 흐르고, 한편에선 안동 시가지로 향하는 병산서원 발 마지막 시내버스가 먼지를 털어내며 길 떠나는 광경이 망막으로 뛰어든다. 까짓것, 걸어가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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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아담한 규모다. 입교당 뒤로 돌아가 보면 수백 년은 됨직한 오래되고 커다란 배롱나무가 잎을 떨구고 있는데 바닥을 붉게 물들인 꽃잎들이 너무나 선연해 가슴이 아릴 정도다.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마치 늦가을 애수를 맛보는 듯한 순간이다.

...내 생전에, 아마 한 生을 다 지불해도
입교당 뒤편 키 큰 배롱나무가 될 수 없겠지만
나는 마냥 가슴이 저리고
한번은, 단 한순간만은 세상도 버리고 싶어졌다

황규관 - '병산서원 배롱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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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심하다 싶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식당과 민박 등의 간판을 내건 집들이 곳곳에 보이고 그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메우고 있었다. 하회마을이 이렇듯 관광객들로 넘쳐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한때 영국의 여왕이 다녀간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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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릿한 먼지 내음을 피우며 세찬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 덕분에 골목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텅 빈 골목을 보게 되니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고개를 돌려 대문 앞을 보니 서애 유성룡 선생의 후손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안동 하회마을이 순천 낙안읍성과 외암리 민속마을 등과 더불어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은 이렇듯 사람들이 실제 그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봉숭아 붉은 꽃잎 흙담 아래 졸고 있는 여름 오후, 매미 울음 소리만 살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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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소낙비가 흩뿌리는 강나루에 배 한 척만 물결 따라 고개를 흔들고 있을 뿐 사공은 보이지 않는다. 강 건너 부용대를 올라야만 하회마을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겠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하릴없이 시간 반을 기다려 마침내 사공이 왔건만 이번엔 손님이 더 와야 배를 띄운다고 한다. 나룻배 치고는 열 네댓 명은 너끈히 탈 수 있을 만큼 큰지라 달랑 두 사람만 이용하자고 조르기엔 면목 없겠다 싶어 이래저래 한숨만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족인 듯한 일행이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이윽고 사공이 휘젓는 삿대질에 하늘이 갈라지고 나룻배는 조금씩 강심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을 듯 쪽빛 창공에 열구름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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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옛 별장일 것이다. 유성룡이 지었다는 옥연정사를 지나 64m 높이의 부용대 오르는 길은 결코 녹녹치 않다. 뜨거운 열기와 비 그친 뒤의 물컹한 습기가 뒤엉켜 입은 옷은 마치 비 맞은냥 다 젖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이 고생 어찌 세상 사는 것에 비하랴 싶어 기를 써본다.

마침내 정상에 오른 이 장쾌함을 그저 한잔 얼음물에 비할 것인가. 저만치 발 아래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것이 보이매 그제서야 왜 하회(河回), '물돌이동네' 라고 부르는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겠다.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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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고 해서 미류(美柳)라고 불리기도 했던 미루나무. 신작로 따라 끝도 없이 줄지어 서서 아름드리 키 재기하던 미루나무, 솔바람이 몰고 와서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어놓고 도망가기도 했던 그 미루나무를 이젠 서울에서 270km 떨어진 고향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난데없이, 미루나무 이파리 사이로 방울져 쏟아지던 그 날의 투명한 햇살이 속절없이 그리워지듯, 20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서야 다시 찾은 안동댐의 첫인상은 오수를 즐기는 아주머니만큼이나 한가롭고 평화롭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하고 아쉽다.

정녕 나는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 가운데 무엇을 더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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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20년 만에 찾은 안동댐은 역시나 지난날의 그것과는 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월영교와 월영공원이다. 강 건너편의 민속촌까지 걸어서 건널 수 있도록 설치한 월영교는 사실 이름에 걸맞지 않는 자태를 하고 있다. 말하자면 양단 치마에 한복 저고리를 걸친 셈이라고나 할까.

월영교를 건너다 말고 등졌던 풍경을 되돌아본다. 밤안개에 포위된 채 아련히 드러난 풍경. 전혀 소란스럽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과 월영교를 비추는 불빛에 드러난 몇 그루 나무들과 강물의 물빛은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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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가는 35번 국도를 따라 길안을 지나 만휴정 가는 길. 산과 들의 평화로운 풍경 위로 그림 같은 구름이 흘러간다. 안동땅이 꽤 넓다는 느낌인데, 인구 18만 명에 면적은 자그만치 서울의 2.5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안동지역의 90% 정도가 산이며 들, 강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겠지만 한 사람이 함께하는 자연의 품도 그만큼 넓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묵계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만휴정, 왼쪽으로 묵계서원을 알리는 작은 푯말이 보인다. 근래에 포장된 듯한 작은 숲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 오르자 오른쪽 숲속에서 낙숫물 소리가 들려온다. 나뭇가지를 헤집고 보니 시원한 폭포가 보이고 그 위로 정자 한채가 보일듯 말듯 걸려 있으니 바로 만휴정이다. 어느 숲속을 헤매다 선경에 들어선 기분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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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담을 덮은 담쟁이 넝쿨이 무성하다. 길다란 다리는 근래에 놓은 듯하나 통나무 두개를 포개어 그 사이를 시멘트로 봉해놓은 것이라 꽤나 정감이 간다. 다리 아래쪽 위로 조그만 소가 있고 물뱀 한마리 첨벙 스며든다. 그만큼 사람 발길이 드문 곳이다. 사실 정자 자체의 건물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정자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만치 공간배치가 절묘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좌우로 늘어선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또한 공간배치가 절묘하기는 매 한가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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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본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세월, 끝 모를 어딘가로 홀연히 흘러가버린 그 속절없는 이별을 내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희망은 이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2004년 8월 5~6일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