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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2 전남 곡성장 24
오일장2009. 1. 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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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잔뜩 웅크린 채 한잠 든 장옥들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이윽고 한편에서 피어오르는 파란 가스 불이 어둠을 사른다. 한두 해 장사가 아닌 듯 이내 화덕 위에 솥이 걸리고 무엇인가 한가득 담겨 끓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곡성 오일장의 명물인 '똥국'이다. 똥국이란 말은 본래 돼지고기국이라는 뜻의 `돈국'이었는데 `싫지 않은 구린내가 살짝 나는 곱창국'이라는 뜻의 별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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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잡은 돼지의 대창을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씻은 뒤 선지를 가득 채워 순대를 만들고, 돼지머리를 하루 종일 곤 국물에 머리고기와 순대를 밥과 함께 말아주는 똥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그때서야 어둑했던 사위가 희뿌연 하게 밝아오며 여기저기서 함석으로 만든 장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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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새벽은 가을 날씨라 하기엔 차갑고 겨울 날씨라 하기엔 옹색한 수준이다. 목까지 차오르는 안개를 탓하며 오늘 장은 재미없을 것이란 아짐(아주머니)의 한숨 비슷한 넋두리는 모닥불 쬐며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에 묻혀 다 타고 남은 재 마냥 이내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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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까지 곡성에는 곡성읍내장, 석곡장, 삼기장 등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들어와서는 장의 수가 늘어나 석곡면에 월봉장, 죽곡면에 죽곡장, 삼기면에 어덕장, 옥천면에 무림장이 새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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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곡성에는 5개의 오일장이 열리는데, 곡성읍의 곡성장이 3/8일, 옥과면의 옥과장이 4/9일, 석곡면의 석곡장이 5/10일, 입면의 입면장이 2/7일, 죽곡면의 죽곡장이 1/6일에 각각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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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하면 손꼽는 것들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돼지고기다. 이곳에서 기른 돼지는 유난히 살이 붉고 비계가 적다. 돼지가 지나치게 크면 살이 질겨 맛을 잃게 되므로 곡성 사람들은 돼지 무게가 70~90kg 정도가 되면 잡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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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장은 구례에서 섬진강 줄기를 따라 17번 국도를 달리다 곡성읍내에 들어서면 17번 국도상에서 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도는 삼거리 한쪽의 넓은 장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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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채나 되는 옛 장옥(場屋)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곡성장에 들어서면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지난날의 오일장 정취가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물론 잔칫날 같았던 옛 장날의 신명이나 떠들썩함은 온데간데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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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그렇게 서 계시지만 말고 어머님 팔짱 한번 껴보시죠?" 하고 말씀드렸더니 기다리셨다는 듯이 얼른 팔짱을 끼시는 어르신. 생각지도 못한 어르신의 행동에 어머님께선 싫지 않으신 듯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 외에 정을 나누고 소식을 나누기도 했던 오일장이 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우리 곁에서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간직하고 계신 부모님들이 아직까지 우리들 곁에 계시는 까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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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곡물류, 면화, 면포, 죽공예품, 밤, 그릇 종류와 기타 일용잡화, 특산물인 토종꿀과 돌실마포가 활발히 거래되었던 곡성장엔 이제 오일장이 돌아와도 문을 여는 장옥이 몇 집 되지 않는다. 1970년대부터 교통이 발달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러선 인근의 광주나 순천 등지와 일일 생활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그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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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던 장은 정오가 넘어서자 곧 파장이 되고 말았다. 장옥이 서있는 장터의 담벼락 너머에 섰던 채소며 군것질거리를 팔던 난전(亂廛)은 파장과 더불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무심한 듯 지나는 아이 혼자  풍경을 이루는 장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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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은 그 지역사회의 문화와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오일장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또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물론 구름은 해를 가리고, 해는 구름을 물들이는 것처럼 오일장을 찾는 이들이 있는 한 오일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우리 오일장에 대한 관심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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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오일장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일 당장 근처의 오일장으로 떠날 일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박웃음을 보고 배우고, 다시 아이들에게 그 함박웃음을 값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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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일.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