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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8 진해에서 만난 두 가지 빛깔의 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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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두 번째로 찾아온 진해에 비가 내린다. 이 세상 양주의 학은 없다는 듯이....... 환장할 봄날에 꽃구경 나선 것도 어디랴 싶기도 하지만 사진 촬영할 생각에 마음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산을 펼쳐들고 진해역 광장으로 나와 중원 로터리로 가는 길. 아닌게 아니라 모든 가로수가 벚나무다. 벌써 고인 빗물에  벚꽃 이파리가 동동 떠다닌다. 나와 더불어 기차를 타고 온 듯한, 우산 쓴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그 수많은 우산 위로 비에 젖은 꽃잎들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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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군항제는 1963년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지역축제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해마다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는 엄청난 인파로 가득한 도시로 뉴스에 비춰져왔고, 나는 봄 마다 질기디 질긴 유혹을 그 인파들을 떠올리며 뿌리쳐왔던 터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릴없이 군항제가 시작된 진해를 찾게 된  날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고맙기까지 한 것도 다 이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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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것처럼, 진해는 해군의 도시다. 해방 후 우리나라 해군의 토양이 된 해양경비대가 발족했을 뿐 아니라 해군 사령탑인 한국함대사령부와 해군통제부가 들어앉았고, 해군신병훈련소며 해군사관학교 등 주요 시설기관들이 모두 진해에 하나둘씩 자리잡은 것이다. 진해가 군항으로서의 역사를 지니게 된 것은 일제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 해군의 후방기지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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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항제 기간에만 특별히 일반에게 문을 여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사령부는 군항제 기간 내내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아무래도 금녀의 집이 궁금한 까닭일 터이다. 영내에 들어서니 바로 바다와 연결되어 있고, 큰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시설 등에서 군사기지임을 실감하게 된다. 비가 내리는 까닭에 사관학교 생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일반인들의 안내를 많은 수병의 우산만 하염없이 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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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굳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던 하늘이 서서히 구름을 걷어내더니 반짝 햇살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거리는, 아니 거리를 수놓은 벚꽃들은 이내 화사하고 풍성한 모양새를 한껏 드러낸다. 정말이지  꽃은 햇살을 받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표정이 천양지차다. 문득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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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산에 오른다. 지난날 가파르게 올라가는 계단 양옆으로 함박웃음을 터뜨리던 벚꽃나무들. 그 사이 검정교복에 하얀 양말을 신은 여학생들이 양산을 손에 들고 발걸음을 총총히 옮기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 속의 장소는 그대로 변함없이 서 있었다.  축제 기간을 맞아 도로를 점령한 천막 음식점들 사이 골목을 헤집고 탑산으로 오르는 길, 계단을 보니 숫자가 쓰여져 있다. 계단을 다 오르고나니 마지막 숫자 '365'가 보인다. 365계단, 일년을 살아내는 정성으로 올라야만 이를 수 있는 곳이란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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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산이라 불리는 산의 본명은 제황산이다. 제황산 안에 공원이 있고 중앙에 8층 높이의 탑 모양 건물이 서있어 사람들이 탑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2층에는 시립박물관이 있어 진해의 역사를 비롯한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고, 꼭대기 층에는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날씨가 청명하여 멀리 중원로터리가 손에 잡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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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로터리는 길이 여덟 갈래로 나뉘어지는, 팔거리다.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전범을 보여준다. 진해의 중심부가 바로 이곳이며, 여기서 진해의 상징이랄 수도 있는 제황산공원이 코앞이다. 진해에 유독 벚나무가 많은 까닭은 이때 일본인들이 많이 심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마구 잘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벚나무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도 왕벚나무가 자생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벚꽃축제로 상징되는 군항제가 진해를 대외적으로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면서 더 많은 벚나무를 심게 되었고 오늘날 진해 일대가 벚나무 천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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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아니 이제는 유명해진 벚꽃명소로 진해여중 옆의 여좌천을 꼽는다. 드라마 ‘로망스’를 통해 유명세를 탔단다. 글쎄, 여좌천 벚꽃길도 나름대로 운치있어 보이지만 진해 벚꽃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경화역에 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나만의 보물창고처럼 숨겨놓고 싶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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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큰 기대 없이 찾아간 곳이지만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감동을 안겨준 곳이니 누구든 이곳을 찾아 가지가 부러지도록 흐드러진 벚꽃이 구름처럼 주변을 에워싼 철로를 걸어본다면 순수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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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벚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듯 보인다. 그러나 어쩐지 쓸쓸한 내음이 묻어난다. 화려한 빛깔에 정신을 잃을 만큼 흠뻑 취해있다 보면 어느새 지상으로 꽃잎 다 날려보내버리기에....... 목련이 꽃잎을 떨궈내는 모양새가 처절하다면 벚꽃은 한치의 망설임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독하고 가차없이 단박에 정을 떼어 놓는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또 봄이 오면 다시 벚꽃에 빠져들고 마는 건 이 生의 봄날이 그만큼 짧기 때문이런가.



2006년 4월 4~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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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 김경범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당신의 마음속 도시는 어디입니까?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나의 도시를 가장 아름답게 여행하는 법! 우리 도시를 사랑하는 20인의 내 마음속 도시 이야기와 팔 년간 전국을 누비며 카메라에 담아낸 임재천의...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