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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8 강원도 정선장 2
오일장2009. 1. 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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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정선읍에서 강릉 쪽으로 약 20km 쯤 떨어져있는 여량은 정선아라리의 발생지라 알려져있다. 여량엔 송천과 임계천이 만나 한데 어울린다는 아우라지 나루가 있다. 이곳에서 정선아라리 한토막 부를라치면 지난날 "하늘 삼천평, 땅 삼천평"이라던가, "시집 가기 전까지 쌀 서 말을 못먹는다"는 말로 표현되던 산간 오지 정선땅의 척박하고 애잔한 삶이 강물 흐르는 소리 따라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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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42번 국도를 따라 비행기재를 넘으면 곧 정선으로 이어진다. 정선장은 버스터미널 맞은편 골목에 옹기종기 선다. 몇 년 전부터 정선오일장 관광 상품이 만들어져 열차를 타고 단체로 들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까닭에 정선군에서 기울이는 관심과 애정이 곳곳에서 각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던가. 오일장이 서는 길목의 한가운데를 플라스틱 지붕으로 덮어 자연스러운 채광을 막은 것이다. 이 때문에 애써 멀리서 정선장을 찾은 사람들 마다 볼멘 소리를 한마디씩 내놓는다. 동네 마다 있는 상설시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불만 아닌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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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한편에선 정선장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직접 떡메를 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정선아라리 공연이 열려 신명을 돋우기도 한다. 다소 자연스러운 맛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시끌벅쩍한 것이 지난날의 오일장 마냥 생기가 넘쳐 규모가 그리 크지않은 정선장을 풍성하게 만들고, 주름진 촌부의 얼굴도 모처럼만에 활짝 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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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영월과 더불어 정선은 대표적인 산간마을이다. 예전보다 교통편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정선을 오가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겨울철에 눈이라도 오면 정선으로  들어가는 많은 길들이 막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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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 정선군의 전체를 가로지르기에 사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모두 산이다. 때문에 정선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적다. 논밭을 다 합쳐도 전체 땅의 10%를 넘기지 못한다. 정선군에서 2. 7일의 정선읍장, 3. 8일의 동면장, 5. 10일의 임계장, 1. 6일의 여량장, 4. 9일의 후평장이 지금도 교대로 서며 한 장단을 이루고 있는 것도 순전히 정선의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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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공산품과 수산물이 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까닭에 골동품과 먹거리를 파는 장돌림도 있지만 여느 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정선과 인근 지역 사람들이 주로 찾는 것은 공산품이지만 외지에서 정선장을 찾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온갖 산나물과 약초 등을 직접 들고나와 난전을 이룬 할머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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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 건너편 인도에는 이런 할머니들이 죽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대부분 이삼십 년 이상 산에서 나물과 약초를 뜯어온 분들이라 척 보면 무슨 나물이고 약초인지 안다지만 장사 수완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때묻지 않은 산간마을의 사람 좋은 인심이 아직 여전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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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음식 골목을 찾거나 근방의 단골 식당을 찾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기 마련이다. 곤드레나물밥, 감자떡, 메밀총떡, 콧등치기국수 등 정선 지역에서 흔히 나는 먹거리로 만든 음식들이 주를 이루는데 무엇 하나 기름진 것이 없어 지난날 정선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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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에는 정선을 대표하는 물산으로 석청, 청석, 해송자, 오미자, 자단향, 자초, 송심, 석심, 인삼 등을 적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구경하기 힘들 뿐더러 설사 나오더래도 장터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근래 들어 정선의 특산물로는 황기를 손꼽는다. 한약재로 쓰이는 황기는 몸이 차거나 더운 사람의 체온을 조절해주는 효능이 있고, 만성 위염이나 위궤양,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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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선장은 우리나라 오일장의 생존 방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이라 할 수 있다. 범람하는 중국산 산나물과 약초의 판매를 근절하고, 정선군에서 생산되는 지역 특산물로만 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정선장의 밝은 미래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타 지역 오일장과 구별되는 차별성의 획득이야말로 대형화 되고 기업화 되는 유통 구조 속에서 우리나라 오일장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하기 위해선 정선장의 정선아라리 공연처럼, 장의 여흥을 돋우는 각 지역 마다의 고유한 전통 공연이나 지역민과 외지인들이 어울려 솜씨를 겨루고 인정을 나누는 씨름판 같은 자연스러운 축제의 장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 한해도 정선장을 찾는 사람들의 부단한 발길이 이어지길 빌어본다.

 (사진 촬영한 날 2008년 9월 27일, 글 쓴 날 2009년 1월 18일)





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