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맛을 보다2009. 3. 26.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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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의 한기가 느껴지는 2007년 11월 27일의 이른 아침, 해인사를 품고 있는 산중에 낭랑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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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울력을 위해 대중 스님들을 모으는 목탁 소리다. 속세의 여념집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산중의 사찰에서도 겨울나기를 위해 준비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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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과 선방 수좌스님, 학승, 행자를 비롯해 사중의 처사들까지 각자의 역할을 나눠가진 채 분주히 움직인다. 해인사의 김장은 꼬박 사흘 동안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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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화엄전 뒤편에 있는 채마밭에서 수 개월 동안 정성을 쏟은  배추를 뽑아서 일일이 해인사 마당까지 나르고, 다시 배추를 반으로 갈라 물에 씻은 다음 소금에 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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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뽑고, 옮기고, 다듬고 절이는 것은 스님들의 몫이지만, 김치를 완성하는 양념을 만들고 이를 버무리는 것은 보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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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11월 28일, 밤새 숨이 죽어 알맞게 절여진 배추를 다시 물에 씻어 소금기를 빼내고 평상에 재는 데만 하루를 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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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해인사 아래 마을에 살고 있는 보살들과 해인사 여성 의용소방대, 신도 등 1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양념을 만들고, 일일이 배추에 버무려서 김치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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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방장 스님이 갓 치댄 김치를 맛본 뒤 “올해 김장이 잘 됐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면 드디어 김장독에 담아 땅에 묻으면서 김장 울력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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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서 담그는 김치는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오신채(五辛菜)에 드는 무릇, 파, 마늘, 부추, 달래를 넣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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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김치 양념으로는 소금과 고춧가루, 생강이 주로 쓰이며 김치의 소를 만드는 부재료로 갓과 미나리, 무채, 대추, 배, 청각, 당근 등을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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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색다른 맛을 내기 위해 찹쌀죽이나 들깨죽, 늙은 호박을 삶은 물을 양념에 섞어 쓰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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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큰스님들은 김장과 같은 울력을 통해 대중과 어울리며 편협되고 아집에 둘러쌓인 자신의 눈과 귀를 열어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매몰되어 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또다른 수행의 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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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사찰에서 울력은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우리나라 사찰의 대들보 격이라 할 수 있는 해인사에서도 총림 대중 전체가 운집하여 손길을 나누는 울력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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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날 사찰에서 스님들이 밭을 일구고 배추를 심어서 겨울나기 김장을 하는 것이 지난날처럼 자급자족을 통한 승가공동체를 이루는 수단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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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큰스님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대중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하심을 배우는 데 울력만 한 것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 듯, 사찰 만의 고유한 김장 울력을 통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전통도 지키며 그것을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는 것은 분명 뜻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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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엔 해인사에서 몇 포기 배추로 김치를 담을 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추하는 계기 삼아 그 김장 울력에 참가해보는 것도 한해를 마무리 짓는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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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채가 빠진 그 담백한 김치 맛도 볼겸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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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한 날 2007년 11월 28~29일, 글 쓴 날 2009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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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