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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졸고 있던 가로등 불빛이 점점 옅어지는 새벽 다섯시, 군산역 앞마당이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이재에는 별반 밝아보이지 않는 인근의 농사꾼에서부터 단골 좌판 상인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이고지고 온 싱싱한 농산물과 해산물, 그리고 여기에 더해 신변잡기와 공산품 등 실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만물 시장이 군산역 코앞에서 열리는 것이다.

3시간 남짓 밀물 때처럼 왁자지껄하다가 차츰 뜨거워지는 햇살과 더불어 썰물처럼 인파가 사라지는 이 같은 풍경을 두고 군산 사람들은 ‘새벽 깜짝 시장’으로 부르며 월명공원과 더불어 군산의 큰 자랑거리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차역 앞에서 자릿세 한 푼 주고받는 이 없이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년 365일 내내 한결같이 서는 이 같은 인간미 넘치는 시장을 그 어디에서 또 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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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8만 명, 면적 376.35km2를 아우르는 오래된 도시, 군산. 1899년 5월 1일,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 나르고 한국을 침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강제로 개항되면서 근대 도시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1949년에 시로 개칭되었고, 1995년에 옥구군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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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 낳은 문호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탁류(濁流)’에서 군산을 이렇게 묘사했다.
“낙동강이니 한강이니 하는 다른 강들처럼 해마다 무서운 물난리를 휘몰아 때리지 않아서 좋다. 하기야 가끔은 홍수가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려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 市街地)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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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난 채만식은 일제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를 고난 속에서 살다 간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호로 평가받고 있으며, 날카로운 현실비판 정신과 특유의 풍자, 반어, 역설의 수법으로 ‘탁류’를 비롯해, ‘태평천하’, ‘금의 정열’ 등 120여 편의 장 단편 소설과 희곡 및 수많은 평론, 수필 작품을 남겼다. 또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탁류’는 ‘식민지 사회의 자화상’을 그린 소설이며 오늘날에 와선 30년대 군산을 가장 잘 묘사해 주고 있는 한 권의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그가 태어난 지 100년 세월이 지난 2001년 3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금강 하구둑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채만식 문학관’을 건립하여 군산 시민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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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군산은 특별한 재미가 있거나 대단한 흥미거리로 가득한 곳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느 도시에서도 기대하기 힘든 아련하고 애틋한 정취를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째보 선창이다. 탁류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째보 선창은 언청이를 이르는 우리말인 ‘째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원래 이 곳 지형이 두 갈래로 찢어져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복개되어 있어 이를 확인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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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확인이야 어찌 되었든 일제 강점기 때 전라, 충청 연안의 어업기지로 변모를 거듭하여 근대 어항의 면모를 갖추었던 째보 선창은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해망동 서부 어판장에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횟집이 몰리면서 점점 퇴색하기 시작해 결국 현재에 이르러선 낡은 어선 몇 척과 더불어 몇 개의 어구 판매점만 남아 옛 명성을 돌아보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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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보 선창이 끝나는 지점인 군산 여객터미널을 뒤로하고 다시 명산동 사거리를 지나면 군산 시민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월명공원 입구가 나타난다. 군산 시내를 품에 안고 바람막이 구실을 하고 있는 월명공원은 봄이면 개나리, 철쭉, 왕벚꽃 등이 앞 다퉈 피고, 크고 작은 소나무로 이루어진 깊은 숲으로 인해 사계절 내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또한 봉우리마다 붙여진 월명산, 장한산, 설림산, 점방산 등이 12km에 이르는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항구 도시 군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봉우리가 월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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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발전을 기원하고자 세워진 월명산 꼭대기 수시탑에 오르면 군산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인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끝없이 줄지어 선 군산 산업 단지의 공장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좀더 높이 들어 멀리 바라보면 점점이 박혀 있는 고군산 열도의 섬 너머로 툭 터진 서해 바다의 수평선이 보인다. 이어서 동쪽을 바라보면 군산 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약간 왼쪽(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군산에서 제일 높은 오성산이 보인다. 오성산 밑으로는 소백산 노령산맥으로부터 장장 401km를 달려온 금강 물이 웅장한 하구둑에 막혀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북쪽은 또 어떠한가. 강 건너 장항 산업 단지와 그 아래 군산 앞바다를 오가는 작은 어선과 대형 선박들, 그리고 옥구평야의 확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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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공원 입구 아래엔 해망동 서부 어판장으로 연결되는 월명터널이 있다. 오직 사람과 자전거 탑승자만 이용할 수 있는 이 작은 터널을 걷노라면 새삼 군산이 얼마나 정겨운 도시인지 실감하게 된다. 작은 말소리나 웃음소리도 어김없이 증폭되어 터널 내에 울려 퍼지고 그 경쾌하고도 조금은 낯설기도 한 소리는 여행자의 피로를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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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포장한 젓갈류와 건어류,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과 횟감을 구하러 나온 군산 시민들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서부 어판장은 동부 어판장이 있는 째보 선창과는 달리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군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은 꼭 빼놓지 말고 들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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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탁류’에서 알 수 있듯 군산 사람들은 금강과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왔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팔공산에서 시작하여 충북 영동과 대전, 공주, 부여일대를 활 모양으로 휘돌아 군산으로 흘러나온다. 지금은 말 그대로 탁류였던 금강이 하구에 둑이 만들어지면서 대규모의 금강호가 조성되었고 이제 이 물은 결코 탁류가 아닌 청류로 바뀌어 해마다 수만 마리씩 떼지어 몰려드는 철새들의 낙원이요, 주변 경관이 상전벽해를 이루어 시원한 바다 바람을 즐길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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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품을 조금만 더 팔면 군산 시내 나운동과 미룡동 일대에 펼쳐진 미제저수지(은파유원지)를 비롯해 개정면 발산리의 여러 문화 유적들, 그리고 최호 장군 유지와 임피향교, 노성당 등을 들러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산 여행의 참 묘미는 모든 곳을 빼놓지 않고 다니며 기념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과 무력의 횡포를 누구보다 통감한 군산 시민들의 삶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튼 애틋한 서정의 발견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이쯤에서 여정을 끝맺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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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하게도 나라를 찾은 이후부터 되려 침체의 길을 걸어온 군산. 그것은 분명 오욕이었고 씻을 수 없는 큰 슬픔이었다. 그러나 이제 군산은 과거의 불명예와 슬픔을 씻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과 마주한 서해안의 총아로 발돋움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국력을 키우고 확장시키는, 우리 민족을 위한 교역의 창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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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동 부두에서, 명산시장에서, 콩나물 고개 산동네에서 만났던 착하고 인정 많던 사람들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눈에 밟혔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낡고 퇴색한 거처와 한치의 가식 없이 들려주던 그들 자신의 삶의 내력은 분명 이 시대에 씌어지는 가슴 아련한 서정시였다.


2003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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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 김경범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당신의 마음속 도시는 어디입니까?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나의 도시를 가장 아름답게 여행하는 법! 우리 도시를 사랑하는 20인의 내 마음속 도시 이야기와 팔 년간 전국을 누비며 카메라에 담아낸 임재천의...


Posted by 임재천